“해묵은 음악계의 이슈”
음악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여러 가지 이슈 중 가장 뜨거운 것은 아마도 표절에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싶다. 통상적으로는 원곡과 8마디 정도의 멜로디, 리듬, 화성 진행이 유사할 때 표절이라고 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표절을 ‘당한’ 원곡자 본인이 표절 여부를 법적으로 주장해야만 비로소 표절에 대한 시비가 가려진다.
결국 표절된 곡을 원작자가 인지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표면화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표절 문제가 단순히 걸리고 안 걸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작곡가가 알면서도 표절을 한다면 설령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본인에게는 음악인으로서 자존심의 문제일 것이다.
표절을 바라보는 관점
밖에 나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브랜드는 다르지만 동일한 외관을 가진 아파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혹자는 외관이 동일하게 보이니 설계를 표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외관은 일반적으로 다 비슷한 형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부 구조와 인테리어에 사용되는 재료들까지 동일하더라도 색깔, 모양, 위치 등 더 세부적인 사항이 다르다면 더욱이 표절이라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표절곡에 대한 논의도 이런 관점에서 좀 더 세심하게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모두 표절인가
곡을 만드는 데에도 외관용과 내관용 재료가 필요하다. 음악의 3요소라 불리는 멜로디, 리듬, 화성은 주로 곡의 내부를 꾸미는 재료로 사용되며 조성, 템포, 송폼 등은 외관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세상에는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수많은 곡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 곡들을 모두 표절이라고 여기진 않는다. 곡의 내관이 같을 수도 있고, 외관의 일부가 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곡을 듣더라도 우리는 이를 다른 곡으로 인식한다.
같은 곡으로 인식되는 주된 이유
한 곡을 듣다가 다른 어떤 곡과 유사하다고 느꼈다면 이는 앞서 얘기한 동일한 내·외관 재료를 활용하여 곡 작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멜로디 라인이 유사하다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멜로디 라인의 음정과 박자가 다르면 곡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유사하더라도 다른 곡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멜로디만큼은 본인의 것으로
수업에서 항상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타인의 곡을 분석하고 카피해보는 연습이다. 자신만의 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의 곡을 분석하고 이를 똑같이 표현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연습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누군가의 곡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곡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멜로디만큼은 기존 곡과 다르게 본인의 창작으로 만드는 연습을 해봐야만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곡 분석과 표절은 거의 비슷한 말일 수도 있다. 표절을 하려고 하면 결국 곡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멜로디까지 카피한다면 거의 표절이 될 것이고, 멜로디를 창작한다면 이는 새로운 다른 곡이 될 것이다.
실전적인 곡 작업 방법
곡을 처음 만들어 보고자 하면 누구나 거치는 첫 코스가 있다. 바로 화성학이다. 화성학은 곡 작업을 위해 필요한 이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학문으로 일반적으로 책의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서 화성학 공부를 해도 실제로 곡은 잘 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렵더라도 본인이 좋아하는 곡 중 한 곡을 선정하여 4마디 또는 8마디 정도를 카피하는 노력을 해보자. 다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기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고 멜로디를 만들어 보는 연습을 동시에 병행해야 한다.
이후 8마디를 16마디로, 16마디를 다시 32마디로 마디 수를 늘려가다 보면 어느새 곡은 3분을 넘어가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이때쯤 그동안 공부했던 화성학 책을 다시 한번 펴보자. 아마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내용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누리호를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분석의 중요성
며칠 전 누리호 발사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듣게 되었다. 이전 1차 발사에서 실패한 원인이 2차 추진체의 기술 결함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이는 러시아에서 기술을 이전해 주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한다.
결국 우리 연구원들이 자력으로 추진체를 만들어 보고자 러시아 구 로켓 박물관에 가서 발사된 지 40년이나 지난 추진체의 사진을 찍어와 연구하고 실험하고 비슷하게 만들어 보면서 만든 결과, 이번 발사에 성공했다고 한다. 진정 뜨거운 박수를 받아 마땅한 대단한 노력의 결실이 아닌가 싶다. 작곡도 이 정도는 노력해야 뜨거운 환호를 받을 만한 곡이 나오지 않을까?
글 조남준(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이 글은 월간믹싱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