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러 사용하면 간단해요”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컴퓨터 음악 수업 중, 몇몇 학생들이 미디 시퀀싱에 대해 얘기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다. 주된 내용은 코드를 미디 노트로 하나하나 찍고 벨로시티로 조작해야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말하길, ‘샘플러를 사용하면 간단하다’고 하는 것이다. 아직 수업에서 샘플러를 다루지는 않은 상태였기에 물어보니 외부 레슨에서 샘플러를 사용해 작곡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샘플링된 음원을 샘플러를 활용하여 작업하게 되면 보다 간편하고 신속하게 곡 작업이 가능해진다.
한음 한음 만들기 vs 루프 불러오기
먼저 전통적인 미디 시퀀싱 방식과 샘플러 사용 방식의 차이를 간략하게 알아보자. 물론 넓게 보면 샘플러도 시퀀서의 한 종류이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옛날 방식의 미디 시퀀싱이란 음 하나하나를 전부 다 연주해서 녹음하거나 마우스로 찍는 등의 과정을 통해 미디 데이터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든 코드, 멜로디의 미디 데이터들은 가상 악기를 통해 다양한 소리로 재생된다.
샘플러는 이미 사전에 녹음되고 편집, 믹싱, 마스터링까지 적용된 오디오 샘플을 그대로 불러와서 사용하는 것이다. 한 음씩 나눠진 ‘원샷 샘플’도 있지만, 완성된 드럼 패턴이나 코드 화음, 패턴을 그대로 불러올 수 있는 코드 프로그레션 샘플도 있다. 특히 요즘 많이 사용하는 방식은 특정 템포, 조성에 맞춰서 4~8마디 짜리 코드 진행으로 연주되어 있는 ‘Loop’를 불러오는 방법이다.
이런 샘플을 사용하면 일일이 화성을 계산하거나 코드 진행을 고민할 필요 없이, 잘 만들어진 소스를 그대로 가져와서 작곡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작곡의 문턱이 많이 낮아지고 작업 속도도 빨라지는 것이다.
특히, 빠르게 소리를 바꾸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샘플러는 작곡가에게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된다. 또한 클라이언트와 공동 작업자들의 의견을 유연하게 적용해 데모를 제공하는 데에도 샘플러가 큰 도움이 된다.
소리의 ‘느낌’을 중시하는 현실
최근 곡 작업의 경향이 많이 변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소리 하나의 ‘느낌’에 충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킥 소리, 스네어 소리, 신디사이저 소리 등 귀를 사로잡는 톤 사운드 하나를 찾아내는 데 더욱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작곡 지망생들이 계속 믹싱, 마스터링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믹싱, 마스터링을 통해 시장에 나와 있는 상업 음반들과 같은 ‘좋은 소리’가 나오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믹싱을 하기 전 작•편곡 및 녹음에서 좋은 원재료를 만드는 과정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청자들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서 디테일하고 정성스럽게 소리를 다듬어가며 톤을 만들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실제로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유명 K-POP 곡들의 악기 소리는 상상 이상의 정성으로 한땀 한땀 만들어진 것들이다.
곡을 만드는 것도 순서가 있다
집을 짓는다고 생각해 보자. 여기서 미디 시퀀싱이나 샘플러를 활용한 작업은 맨 마지막 공정인 인테리어에 해당한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은 뼈대를 세우고 방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즉,‘좋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한 뼈대를 만드는 작업이 선행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순서의 문제다. 곡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는 초보자라면 샘플러를 활용한 음원 소스 퀄리티를 높이는 작업보다는 먼저 곡 분석을 통하여 곡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 먼저다.
간단하게 질문해보자. ‘음원을 내고자 한다면 무엇을 먼저 배워야 할까? 내 곡을 만들어 발매하고자 한다면 곡 분석을 통해 곡의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공부하는 것이 먼저다. 음원 소스는 그 후에 공부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 조남준(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이 글은 월간믹싱에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