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에는 본인의 악기 포지션에 따라 작곡을 시작할 때 어떤 자세로 음악을 감상하고 분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뤘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작곡에 임할 때 악기별로 명심해야 할 가이드 라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컬 포지션의 곡 작업자가 갖추어야 할 사항
보컬은 자신의 가창 음역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보컬 포지션에 있는 대부분의 곡 작업자의 경우 자신의 가창 음역대를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가창 음역대란 쉽게 말해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과 높은 음이다.
일반적으로 작곡가라 칭하는 (요즘은 탑 라이너라고도 불리는) 멜로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메인 멜로디를 가창할 보컬의 음역대는 조성(key)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임의의 키로 곡을 완성한 이후 보컬의 음역대에 맞지 않아 키를 바꾸면서 편곡을 완전히 수정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멜로디를 녹음해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악보가 완성되면 멜로디를 미디 악기로 시퀀싱 한 후 오디오 파일로 만들어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송, 무한 반복해서 듣는 것이 좋다. 이때 악보를 같이 보면서 멜로디 라인의 리듬을 충분히 익히고 이후에 음정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녹음할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좋다
보컬 포지션의 곡 작업자들은 대부분 본인이 직접 자기 곡을 부르길 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꼭 가창한 것을 녹음해보길 권한다. 이는 가사 완성 후 멜로디와 함께 맞춰보는 작업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노래 연습 시에도 항상 습관처럼 수행하는 것이 좋다.
요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활용하거나 개인적인 녹음 장비를 구비해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직접 녹음된 파형을 눈으로 보고 반복해서 들으며 음정의 높낮이 및 숨 처리, 바이브레이션 처리 등 디테일하게 수정할 부분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지금은 무조건 많이 부르고 누군가 옆에서 함께 들어주며 틀린 부분을 수정해 주던 시절과 다르다. 이젠 혼자서 녹음하고 수정도 가능한 홈레코딩 시대가 되었다.
튠(tune)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익혀야 한다
예전의 곡 작업 과정에서 보컬은 노래만 부르면 됐었다. 하지만 요즘은 멜로디의 수정 및 코러스 라인 제작, 튠(tune) 작업 등 점차 역할의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튠의 경우 본인이 수정해야 할 부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직접 작업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직접 프로그램으로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이후 가창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단어의 정확한 발음 및 음정이 약간 떨어지거나 높아지는 부분, 숨소리 처리, 바이브레이션 처리 등의 문제를 파형을 통해 눈으로 보고 반복적으로 소리로 들으면서 문제점을 체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반 포지션의 곡 작업자가 갖추어야 할 사항
나만의 보컬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건반의 경우 다른 포지션에 비해 쉽게 곡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경우가 많다. 대신 나만의 곡을 가창해 줄 보컬 포지션 연주자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런 경우 오히려 곡 작업 전에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가창자를 미리 찾아 정서적인 부분까지 함께 공유해 놓는다면 이후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서로 간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가창 곡 작업 시 건반 연주는 기악곡과는 다르다
건반 플레이를 잘하는 연주자를 소개받아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겪게 되는 상황이 있다. 곡 작업, 즉 음반 작업 경험이 없는 연주자의 경우 곡 전체를 솔로 플레이하듯이 연주한다는 점이다.
가창 곡에서는 보컬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해 보컬의 멜로디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악기 연주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해가 어렵다면 곡의 송폼에 따라 건반 연주의 기준을 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연주자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심플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코드(Chord)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ization)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 좋다
건반 포지션이라면 코드(Chord) 리-하모니제이션(Re-harmonization)을 아주 깊게 공부해야 한다. 특히 리-하모니제이션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모달 인터체인지(Modal Interchange)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좋다. 모달 인터체인지란 쉽게 말해 기존의 코드를 다른 조성에서 가져온 코드로 바꿔주는 작업이라 생각하면 된다.
축구로 예를 들자면 영국의 토트넘이란 구단이 있다. (손흥민 선수가 소속되어 있기에 아마 이제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응원하는 팀이 아닐까 싶다) 이 팀의 모든 포지션의 선수가 영국 선수로만 채워져 있지 않고 다양한 나라의 선수들로 구성된 이유도 세계 각국의 많은 팬들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모든 선수를 전부 외국인 선수들로 바꾼다면 이는 영국 팀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코드 리-하모니제이션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필요한 위치에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가상악기(VSTI)에 대한 정보와 악기 음색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곡 작업을 위한 악기 편곡을 진행하다 보면 리얼 악기를 녹음하는 것보다 가상악기(VSTI)를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대가 컴퓨터를 활용한 음악을 만드는 추세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은 가상악기가 리얼 악기의 퀄리티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 이제는 실제 악기 음원을 녹음해 가상 악기 음원으로 만들어 활용할 만큼 컴퓨터의 사양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해당 악기를 배워 실제 연주를 하지 않더라도 건반을 활용해 거의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다.
따라서 곡 작업자는 가상악기 개발사의 음원 소스들을 최대한 많이 들어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이는 건반 연주자뿐만 아니라 모든 곡 작업자들에게 해당된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곡에 사용할 악기 소스를 미리 찾아놓고 설정해 놓을 수 있다면 작업 시간을 현저하게 줄일 수 있고, 이는 곧 비용과도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글 조남준(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과 겸임교수)
이 글은 월간믹싱에 게재됐습니다.